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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 상황을 보면 누군가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자들이 잡혀가고 정부 비판적인 인사들이 불이익을 받고, 하나하나 꼽을 수 없을 만큼 우려스러운 일들이 곳곳에서 수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신을 보다보니 시계가 고장난 나라가 또 있습니다. 프랑스입니다. 물론 사실상의 쿠데타가 일어나는 곳(마다가스카르)도 있고 부정 선거 시비로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 나라(몰도바)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역사 차원에서 볼 때 현재 프랑스의 모습은 이런 나라들보다 더 경악할 만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 정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정부와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이 복면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시위에 참가하면 처벌하는 내용의 입법 추진 의사를 밝혔기 때문입니다. '프랑스판 신지호'는 UMP의 디디에 쥘리아 의원입니다. 집회나 시위에 복면이나 다른 것으로 얼굴을 가리면 벌금을 물게 하거나 금고형에 처하겠다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당 차원에서도 이 법안을 지지하고 있고 UMP가 하원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불도저식'으로 밀어부친다면 통과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최근 프랑스에서 나토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시위가 벌어졌는데 일부 과격 시위대가 방화 등을 해서 '폭동'을 연상케 하자,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의 하나입니다. 과격 시위대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코메디 법안이라는 생각은 신 의원이 지난 10월 비슷한 법안을 내놓았을 때와 같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방송사 기술자에게 화내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엄청난 클릭수를 기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요, 결국 지난 1일 이를 내보낸 인터넷 신문 기자 등 4명이 경찰 조사를 받아 논란이 됐습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해 6월 30일 프랑스3TV와 인터뷰를 하기 전에 방송사 기술자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화를 냈습니다. 뭐 핏대를 올리거나 한 것은 아니고 교육의 문제라는 둥, 이런 데서 일할 자격이 없다는 둥 깐족거리는 수준이지만 눈살을 지푸리게 만드는 모습이었습니다.
(화내는 사르코지 동영상)

이 동영상은 진보 성향의 인터넷 신문인 '뤼(rue)89'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고 프랑스3TV측은 편집국장, 기자 등 관련자 4명을 고소했습니다. 혐의는 ‘(필름) 도난·은닉·저작권 침해’. 자신들의 영상물을 무단으로 공개했다는 겁니다.

해당 기자는 경찰 조사 후 '국경없는 기자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엘리제궁에서 프랑스3 TV에 고소를 하라고 압력을 넣었음이 틀림없다.”며 “명백히 조작된 정치적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대통령의 화내는 모습을 공개한 것이 경찰 조사를 받을 정도라니, 등기로 보낸 소환장이 도착하기 전에 체포한 검찰을 둔 대한민국과 프랑스도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언론사 취재물을 허락 없이 배포한 것을 옹호하는 건 아니니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끝이냐, 그럴리가요.
프랑스 의회는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를 막기 위한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는 법을 처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불법 다운로드, 막아야 합니다. 이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문제는 방법입니다. 불법 다운로드를 하다 걸린 네티즌에게 1차로 메일 경고를 하고 3개월 내 또다시 다운로드를 하면 공식 서한을 통해 2차 경고를 합니다. 그러다 1년 내 또 걸릴 경우 인터넷 접속을 차단 당합니다.

한마디로 인터넷을 사용할 권리를 박탈한다는 건데,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기본권 침해 논란이 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사용은 기본권이라는 시민단체와 야당, 심지어 여당 일부 의원들까지 이 법안을 반대하고 있지만 문화장관은 인터넷 사용은 기본권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또 기본권 침해 논란을 떠나서 인터넷 접속이 끊긴 다음에야 무죄를 소명할 기회가 주어지고 본인이 이를 증명해야 합니다.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경우 다른 사람의 죄를 뒤집어 쓸 수 있다는 맹점이 있는 겁니다.


악플러를 잡겠다고 네티즌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모욕죄를 추진하고 있는 우리 정부와 프랑스 정부의 모습, 역시 비슷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불법 시위, 무단 게재, 불법 다운로드, 악플을 옹호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재가 우선이라는 철학을 갖고, 강경 대응이 만나라는 자세로 정부를 운영하는 것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겁니다.

내일은 씁쓸한 뉴스를 우리 정부가 줄지 프랑스 정부가 줄지,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P.S(2009/4/19 업뎃):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삼진 아웃제는 일단 제동이 걸렸습니다. 표결에 부쳤는데 반대 21,찬성 15표로 부결됐습니다.

숫자를 보면 뭔가 이상하시죠? 프랑스 의회 재적은 577명인데 이날  여당의원 대부분은 불참하고 사회당 등 야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진 겁니다. 표결에 부치기 위해서는 재적 과반 등의 출석 요건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결과인데요. 이번 일 때문에 프랑스 당정은 지나치게 결석을 많이 하면 금전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는데,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쨌거나 의원들이 본회의 출석 안하고 '땡땡이' 치는 건 프랑스도 마찬가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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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라마녀